2002/06/22
해외무관 현지르포〈15〉-지금 브뤼셀에선…
http://kookbang.dema.go.kr/submenu/HearTypeView.asp?v_w_date=20020622&v_w_date_check=20020622&menuCd=3004&menuSeq=7&v_k_seqn=1&menuCnt=30913
한국전 참전50주년 기념행사 `한국 ·벨기에 하나' 역사적 순간
유럽의 수도 혹은 유럽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방무관으로서 국익 증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며 수많은 군사외교 활동을 전개해 왔지만 나에겐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귀중한 날이 있다. 그날은 유난히도 맑은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들뜬 기분으로 공원을 찾거나 일광욕을 즐기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 쿠클베르그 국립 대성심 성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2000년 9월18일, 6·25전쟁 참전 5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군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갈색 베레모를 눌러쓴 노병들의 눈은 밝게 빛났다. 50년 전 10대 후반의 청년모습 그대로였다. 비록 세월의 흐름속에 숨길 수 없는 주름살의 골은 깊어졌지만 전방을 주시하는 그들의 눈동자에는 50년 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1950년 9월18일. 그날은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가 동방의 등불 `꼬레'(Coree:대한민국)에서 공산침략을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1개 대대를 파병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원병을 모집했다. 2000여 명이 넘는 많은 지원자 가운데 엄선된 700여 명의 1개 대대병력, 대부분 18~19세의 청년 민간인들이었지만 마르쉬 레 담에 위치한 특공부대에서 파병을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전사들이었다. 룩셈부르크도 1개 소대를 모집해 벨기에 대대에 편입했다. 모든 준비를 완료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1950년 12월18일 안트워프 항을 출발, 긴 항해 끝에 51년 1월31일 부산항에 도착, 곧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그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험준한 산악지대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광신적이며 수적으로 우세한 적군을 맞아 임진 전투 ·학당리 전투 ·잣골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연 참전 병력 3587명 중 희생자는 벨기에 장병 106명과 룩셈부르크 장병 2명 뿐이었다. 벨기에 대대는 55년에 본국으로 철수해 곧바로 해체됐으나 그들의 빛나는 전통은 벨기에 최정예 부대인 제3공수대대에 전수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무공에 빛나는 부대기를 전수하고, 한국전 참전박물관을 설립했으며, 한국의 날 행사도 매년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6·25전쟁이 50년이라는 세월 속에 잊혀진 전쟁으로 인식돼 가자 벨기에 참전용사협회는 역사에 길이 남는 기념행사를 계획했다. 1996년 9월18일 전체 행정위 회의를 열어 벨기에 승리의 상징이자 노병들의 성당인 쿠클베르그 국립 대성심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를 설치, 참전대대를 기념하고 그 의미를 영원히 후세에 전할 것을 결의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두 9개의 유리창을 3개 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3개의 유리창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야간 순찰대, 3개의 유리창에는 희망과 평화의 비둘기가 한반도 위를 나는 모습, 그리고 나머지 유리창에는 한국의 풍경을 묘사했다. 벨기에의 알베르 2세 국왕이 이날 직접 참석해 헌증식을 했으며 3부요인과 주요 외교사절단 및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브뤼셀 한인교회 성가대는 `생명의 양식' `아리랑' 등을 비롯, 성가·가곡·민요 등을 불러 한껏 한국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은 한 -벨 모두가 하나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벨기에 역사와 함께 할 쿠클베르그 국립 대성심 성당의 6·25전쟁 관련 스테인드글라스는 현재 자유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 젊은 세대와 후손들에게 영원히 그 의미를 전하게 될 것이다. 〈駐벨기에 · 육군중령 이승선〉
2002.06.22 駐벨기에^ 육군중령 이승선
한국전 참전50주년 기념행사 `한국 ·벨기에 하나' 역사적 순간
유럽의 수도 혹은 유럽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동안 국방무관으로서 국익 증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며 수많은 군사외교 활동을 전개해 왔지만 나에겐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귀중한 날이 있다. 그날은 유난히도 맑은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들뜬 기분으로 공원을 찾거나 일광욕을 즐기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 쿠클베르그 국립 대성심 성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2000년 9월18일, 6·25전쟁 참전 5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군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갈색 베레모를 눌러쓴 노병들의 눈은 밝게 빛났다. 50년 전 10대 후반의 청년모습 그대로였다. 비록 세월의 흐름속에 숨길 수 없는 주름살의 골은 깊어졌지만 전방을 주시하는 그들의 눈동자에는 50년 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1950년 9월18일. 그날은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가 동방의 등불 `꼬레'(Coree:대한민국)에서 공산침략을 물리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1개 대대를 파병키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원병을 모집했다. 2000여 명이 넘는 많은 지원자 가운데 엄선된 700여 명의 1개 대대병력, 대부분 18~19세의 청년 민간인들이었지만 마르쉬 레 담에 위치한 특공부대에서 파병을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은 전사들이었다. 룩셈부르크도 1개 소대를 모집해 벨기에 대대에 편입했다. 모든 준비를 완료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1950년 12월18일 안트워프 항을 출발, 긴 항해 끝에 51년 1월31일 부산항에 도착, 곧바로 전선에 투입됐다. 그들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험준한 산악지대와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광신적이며 수적으로 우세한 적군을 맞아 임진 전투 ·학당리 전투 ·잣골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연 참전 병력 3587명 중 희생자는 벨기에 장병 106명과 룩셈부르크 장병 2명 뿐이었다. 벨기에 대대는 55년에 본국으로 철수해 곧바로 해체됐으나 그들의 빛나는 전통은 벨기에 최정예 부대인 제3공수대대에 전수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무공에 빛나는 부대기를 전수하고, 한국전 참전박물관을 설립했으며, 한국의 날 행사도 매년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6·25전쟁이 50년이라는 세월 속에 잊혀진 전쟁으로 인식돼 가자 벨기에 참전용사협회는 역사에 길이 남는 기념행사를 계획했다. 1996년 9월18일 전체 행정위 회의를 열어 벨기에 승리의 상징이자 노병들의 성당인 쿠클베르그 국립 대성심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를 설치, 참전대대를 기념하고 그 의미를 영원히 후세에 전할 것을 결의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두 9개의 유리창을 3개 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3개의 유리창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야간 순찰대, 3개의 유리창에는 희망과 평화의 비둘기가 한반도 위를 나는 모습, 그리고 나머지 유리창에는 한국의 풍경을 묘사했다. 벨기에의 알베르 2세 국왕이 이날 직접 참석해 헌증식을 했으며 3부요인과 주요 외교사절단 및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브뤼셀 한인교회 성가대는 `생명의 양식' `아리랑' 등을 비롯, 성가·가곡·민요 등을 불러 한껏 한국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은 한 -벨 모두가 하나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벨기에 역사와 함께 할 쿠클베르그 국립 대성심 성당의 6·25전쟁 관련 스테인드글라스는 현재 자유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는 젊은 세대와 후손들에게 영원히 그 의미를 전하게 될 것이다. 〈駐벨기에 · 육군중령 이승선〉
2002.06.22 駐벨기에^ 육군중령 이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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